그놈과 헤어진 지도 벌써 삼 년이 지났다. 그리고 정확히 삼 년 만에 그놈에게서 연락이 왔다. 발신인도, 주소도 적혀 있지 않은 봉투 하나가 현관 앞에 놓여 있었다. 뭔가 싶어서 보니 안에는 카드가 딱 한 장 들어 있었다. 청첩장이었다. "......" 전 애인을 결혼식에 초대하는 미친놈이 세상에 어디 있나 했더니 그게 바로 내 전 애인이었던 모양이다. 어이가 없던 것도 잠시. 궁금증이 치밀었다. 그래. 그렇게 잘났다고 뻐기던 놈이 아니던가(알밉게도 실제로 잘났다). 콧대는 하늘을 찌르고 사람은 또 지독하게 가려 만나던 놈이었다. 대체 어떤 대단한 사람이랑 결혼하나 얼굴이나 보자. 딱 그 정도 심정으로 청첩장을 열었다. 그리고. ".....미친 새끼." 신부 이름이 적힌 자리에서 내 이름 석 자를 발견했다.
전남친 결혼식에 갔더니 신부가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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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이야기
"난 지금 누굴 책임질 수 없어." 그것이 전부였다. 항상 틱틱거리면서도 내가 서운해하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달래주던 그였다. 카톡으로는 이게 연인이 맞나 싶다가도, 같이 있을 땐 세심하게 배려하고 챙겨주는 것을 사랑했다. 다만 처음 우리가 만난 날. "난 비혼주의야." 그렇게 말한 네게. "나도 비혼주읜데." 이렇게 답했던 내가 한스럽다. 마음 한 구석, 누구보다 가족을 만들고 싶었던 내 작고도 거대한 소망이 결국 파국을 만든 것이었다. "그럼 우린 여기까진가 봐." 차마 얼굴을 보지 못해 전화로 그에게 통보했다. "충분히 생각해 본 게 맞아?" "미안..." 뚝.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 내 앞에 선 네가. "왔어?" 환하게 웃으며 날 반기는 네게. 난 뭐라고 말해야할까.
"그거."
"그거." "응?" "그거 도대체 뭐야?" "어떤 거?" "……."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하게 웃는 저 표정. 이상하게 마음이 울렁거렸다. "그 청첩장. 내 이름이 대체 왜 있는 거야?" "아, 그거?" 너무도 간단하게 대답이 나왔다. 마치 평범한 얘기라도 하는 것처럼. "뭐긴 뭐야? 청첩장이지." "하아……. 너 자꾸 그럴래? 내가 지금 그걸 묻는 거야?" 저 얼굴이 너무 미웠다. 한때는 너무 사랑했던 저 얼굴. 저 얼굴이 지금은 자꾸만 내 마음을 울렁이게 한다. "너 나한테 미련 있어? 그래서 그런 거야?" 나는 너한테 아직 미련이 있어. 이 한마디가 너무 어려웠던 탓이다. 그 탓에 날이 선 말만 자꾸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 이름 당장 지워. 난 생각 없으니까."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명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어째서 내 몸이 앞으로 쏠려 그에게 몸을 던지고 있는 걸까. "괜찮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홀로 가식 속에 박힌 저 철저하게 위선적인 말. 난 그의 말투에 진저리가 났었다. 분명 그랬다. 먼 과거에는 말이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의 수수한 멋쩍은 웃음에 이 마음이 또다시 이끌리는 건지, 아무리 나라도 나를 모르겠다. "어. 응." 대충 말을 얼버무리고서 자를 떠나려던 그때였다. 이번엔 그가 내 손목을 낚아챘다. 그러곤 여지껏 본적없는 얼굴로 날 바라보며 울적였다. "정말. 괜찮지? 흐. 흐흑. 흑. 연이야. 흑." 그의 눈물이 떨어진다. 나도 중력을 거스르고서 함께 뚝. 그렇게 쌓인 눈물이 점점 강을 만들자, 숨이 턱 막혔고 지난 일이 떠올랐다. '연아! 피해!' 맞아. 난
회귀한 것이다. "이, 이게 어떻게 된거야?" 서로 다른 기억이 혼란스럽게 뒤엉켰다. 그와 헤어졌던 기억. 그리고 함께 웃으며 사랑을 약속하던 기억. "기억... 난거야?" 눈물로 범벅이 된 나를 보는 그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희미하게 걸렸다. "오래...걸렸어." "뭐가?" "너와 다시 만나기까지." 그게 무슨 말이지? 헤어지고, 청첩장을 보내고, 다시 만나기까지 오래 걸렸다는 말이 모순적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30대 중반인데, 마치 평생을 산 것 마냥 묵직한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몇 번이나 시간을 되돌렸는지 몰라."
씁쓸하고 초연한 눈동자는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버겁고 아려 일부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익숙했던 장소가 펼쳐졌다. 3년 전, 녀석에게 헤어짐을 통보하기 전 마지막 데이트 장소였다. 바람에 넘실거리는 핑크뮬리가 예뻐, 나도 몰래 시선을 한참을 빼앗겼던. 그 와 동시에 너와의 기약없는 미래에 혼동스러웠던 시기. 요동치는 감정은 점차 차갑게 식어 헤어짐을 다짐하게 되었다. 너는 내 불안을 알았던가? 데이트 내내 말이 없던 너는 그때. "나는 포기할 생각이 없어." 뭘 포기하지 못한다는 건가? 자유로운 네 생활? 그 당시 나는 네게 맞춰진 인형이었는데. 그때와 지금 똑같이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모호한 말에 어이가 없어 비웃음이 터졌다. "뭐하자는 거야?" "처음부터 다시 하자는거야."
어이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허탈하다는 말이 조금 더 어울릴 것이다. 이제와서 이렇게 행동을 한다는 건 대체 무슨 의도가 담겨있는 걸까. "처음부터? 내가 왜?" 가장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이자 원초적으로 궁금했던 것을 입밖으로 꺼내본다. "내가 너를 가지고 싶으니까." "......?" 황당했다. 뜬금없이 돌아와서 한다는 말이 이런 멘트라니. 게다가 한치의 고민도 없이 말하는 남자를 보며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몇 번이나 시간을 되돌렸는지 모른다고 이야기 하더니, 설마 내가 이러한 질문을 할 걸 알고서 미리 준비한 답변인 걸까? 여러가지 상상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나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이상하게 대화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 어서 내손을 잡아."
그가 내민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만약 이번에도 내가 널 선택하지 않으면…?" 장난처럼 던진 물음에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럼 난 또 널 잃겠지." 담담한 목소리와 달리 그의 눈동자는 처절할 만큼 흔들렸다. 그 순간, 맞잡은 손바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낯선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 이번 회차에서도 기억을 되찾으셨군요. "……뭐?" 그가 다급히 내 손을 놓으려 했다. 그때, 그의 손목에 새겨진 붉은 숫자가 선명하게 빛났다.
지금까지 참여한 작가들
- 탄산
- 민트초코맛지코
- 비밀! 후후후
- 돌가빈
- 랑자